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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Europe(2025)

20250604 다하우 강제수용소 추모공간(KZ-Gedenkstätte Dachau)

by 사딸라4SGD 2025.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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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다하우 강제수용소 추모공간(KZ-Gedenkstätte Dachau)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안으로 들어갔다.

 

 

한때 수용소 앞까지 들어오던 철도와, 역 플랫폼의 흔적.

아까 타고 온 열차가 이용하는 철도에서 갈라져 나온 지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48°16'01.8"N 11°27'57.6"E · 48.267167, 11.46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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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 지도 정보

 

 

항공사진.

수용소가 있던 시절의 면적은 현재 남아있는 면적보다 넓다.

 

 

입구.

 

 

미군 참전 용사 전우회에서 게시한 현판.

 

 

철문.

 

 

'Arbeit Macht Frei.'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는 뜻의 독일어 관용구인데, 하필 나치 독일 강제 수용소 입구에 많이들 걸려있던 문구다.

 

 

안으로 들어갔다.

 

 

Dachau Concentration Camp Memorial Site · Pater-Roth-Straße 2A, 85221 Dachau, 독일

★★★★★ · 추모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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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어왔던 문.

 

 

추모 문구가 위에서부터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 순으로 적혀있다.

 

 

수용소 시절에는 유지 관리 건물로 쓰이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당시 나치 독일의 영토와 점령지역에서 운용된 강제수용소.

 

 

다하우 강제수용소(KZ Dachau)와 인근의 보조 수용소의 위치.

 

 

국가사회주의 독재가 가능하게 된 계기.

 

 

민주주의에 대한 탄압.

 

 

대공황.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

 

 

수감자들이 수감되기 전에 촬영된 사진들.

 

 

 

 

 

 

수감자 관련 자료들.

 

 

강제수용소의 시작.

 

 

정치범들.

단지 나치 독일에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이른바 '반사회분자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

 

 

동성애자들.

 

 

예방적 구금으로 인한 재소자들.

예방적 구금이라니..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이민자들.

 

 

수감자들 중에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오스트리아인.

안슐루스(Anschluss)라는 강제 병합 절차를 통해 병합했지만..

 

이런 식으로 말도 안되는 투표를 했다. 왼쪽의 큰 원이 '예', 작은 원이 '아니오'.

 

 

 

주데텐란트(Sudetenland, 구 체코슬로바키아 일부 지역)의 독일계 주민들.

 

 

유대인들.

 

 

다하우 강제수용소(KZ Dachau)는 그 악명높은 SS(슈츠슈타펠, Schutzstaffel) 무장친위대가 관리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KZ Dachau)에서 처형당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다하우 강제수용소(KZ Dachau)는 다른 수용소의 모델이 된다.

 

 

수감자들의 일상.

연병장에 집합.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서 있어야 했다.

적어도 한두시간씩 계속.

하지만 몇시간씩, 밤새도록, 심지어 72시간 계속되기도 했다.

덥든 춥든 무조건 서있어야 헀다.

옆에서 동료 수감자가 쓰러져도 도와주는 것이 금지됐다.

심지어는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 이미 사망한 수감자를 세워놓기도 했다고 한다.

 

군대에서 연병장에 한시간 서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몇시간씩 아무것도 못하고 서있어야 했다니..

 

 

 

노역.

 

 

수감자들이 쓰던 식기.

 

 

열악한 음식과 옷.

의식주 어느것도 제대로 충족시킬 수 없던 공간.

 

 

 

석방되는 수감자들도 있었지만, 매일 경찰에 어디 사는지 보고를 해야 했다고 한다.

 

 

처벌과 공포.

 

 

열악한 상황에서도 수감자들의 연대는 계속되었다.

 

 

수감자들이 석방된 직후의 모습.

피골이 상접한 처참한 몰골.

 

 

그나저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교사들과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때마침 나오던 남학생 서너명이 있었다.

문 앞에서 그들 중 한 명이 내게 합장🙏을 하는 제스쳐를 취했고, 친구로 보이는 다른 학생들은 낄낄댔다.

이걸 뭐라고 해석해야하지..? 🤔

이상한 극우 커뮤니티 하는거 아니지? ^^

 

 

전쟁 기간 중의 강제 수용소.

 

 

1942년의 지도.

 

 

강제 수용소는 더욱 극단적으로 변해갔다.

체코인과 폴란드인에 대한 박해도 있었다.

 

 

수용소의 소개(疏開).

영문 설명서에 'vacation'이라 쓰여있어서 자칫 '휴가'로 오역될 수 있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휴가와는 거리가 멀다.

기존의 수용소는 SS(슈츠슈타펠, Schutzstaffel) 무장친위대가 훈련을 하기 위해 몇달 간 사용했고, 기존의 수감자들은 더욱 열악한 다른 수용소로 이감된 것이다.

 

 

수용소의 상황은 열악했고, 질병이 도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폴란드인 수감자들.

 

 

유대인 수감자들.

 

 

체코인 수감자들.

 

 

심지어 스페인 내전 포로도 수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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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들.

 

 

열악한 상황에서도 수감자들의 연대는 계속되었다.

 

 

점점 확대되는 강제수용소의 시스템.

 

 

소련 전쟁포로에 대한 학살도 있었다.

명백한 전쟁 범죄.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감자를 살해하기도 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당시 수용소의 모형.

 

 

잔혹하고 불쾌할 수 있는 사진이 있어 모자이크 처리..

 

 

전쟁 후반에도 새로 건립되던 수용소들..

 

 

새로운 수감자 집단 중에는

 

 

소련인들,

 

 

유고슬라비아인들,

 

 

네덜란드인, 벨기에인, 룩셈부르크인도 있었다.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폴란드인, 그리스인, 스페인인, 헝가리인..

 

 

생체실험과 살인.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수감자는 약물 주사로 살해되었다.

 

 

생체 실험.

 

 

열악한 상황에서도 수감자들의 연대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전세는 점점 나치 독일에 불리해져만 갔다.

 

 

독일이 점령지를 잃으며 사용할 수 있는 수용소도 적어졌으며, 다하우(Dachau)에 수감자들이 점점 더 몰려들었다.

한편으로는 저항이 계속되었다.

 

 

결국 전쟁은 끝났고, 관련 전범들은 심판을 받았다.

 

 

미군이 점령한 이후, 생존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돌아갈 마을, 친척이 없었다.

그래서 전후 몇년동안 독일에 머물러야 헀다.

 

 

전후(戰後) 한동안 이곳은 난민 캠프로 쓰였다.

 

 

포로 수용소로 사용되기도.

 

 

이후 추모 공간으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른다.

 

 

추모 조형물.

 

 

재판 관련 자료실.

 

 

출구로 나가기 직전.

 

 

다양한 언어로 된 추모 현판.

 

 

'Arbeit Macht Frei.' 문구가 쓰여진 문.

이것이 진품이고, 바깥의 문에 걸려 있는 것은 복제품.

 

 

밖으로 나갔다.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 순으로 적혀있는 글.

 

 

사진 속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로 갔다.

 

 

 

수감자들이 살던 공간을 재현.

 

 

재현한 것이긴 한데.. 이런데서 살았다고?

침대가 뭐 이따위야..

 

 

관물대.

 

 

세면대?

 

 

화장실..

칸막이도 없이 이모양 이꼴.

 

 

실감이 안 간다.

대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간 건지..

 

 

밖으로 나갔다.

 

 

나무들.

 

 

지금은 이렇게 공터이지만

 

 

한때는 이 자리에 수감자들이 생활하는 건물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고뇌 예배당(Todesangst-Christi-Kapelle)

 

 

Mortal Agony of Christ Chapel · Alte Römerstraße 89, 85221 Dachau,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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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추모 공간(Jüdische Gedenkstätte)

 

 

Jewish Memorial · Alte Römerstraße 75, 85221 Dachau,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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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고뇌 예배당(Todesangst-Christi-Kapelle)의 뒤.

 

 

수도원.

 

 

Carmel Holy Blood · Alte Römerstraße 91, 85221 Dachau, 독일

★★★★★ ·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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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들어갔다 나왔다.

 

 

교회.

 

 

Versöhnungskirche - Evangelisch-Lutherische Kirchengemeinde Dachau - Gnadenkirche · Alte Römerstraße 87, 85221 Dachau, 독

★★★★☆ · 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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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

 

 

작은 川.

이떄부터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화장터 입구.

 

 

입장은 16시 30분까지 가능.

16시 45분에 폐쇄.

 

 

화장터 건물.

 

 

Crematorium · KZ-Gedenkstätte, Alte Römerstraße 75, 85221 Dachau, 독일

★★★★★ · 강제수용소 추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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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화장터로도, 독가스로 수감자를 살해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진 중 어느 방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이 중 가스실이 있었다.

수감자들을 속이기 위해 샤워시설인 것처럼 속였다고 한다.

 

 

화장터를 보고 나왔다.

 

 

러시아 정교회 예배당.

 

 

Russian Orthodox Chapel · KZ-Gedenkstätte, Alte Römerstraße 75, 85221 Dachau, 독일

★★★★★ ·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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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 검은지빠귀가 있었다.

 

 

이제 밖으로 나갈 시간.

10시 30분쯤 되었다.

슬슬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와야 좋은 듯..

 

 

우버로 택시를 불러 슐라이스하임 궁전 단지(Schlossanlage Schleißheim)로 간 이야기는 다음 문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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